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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촌을 빛낸 인물] 김세환
 
상촌신문 기사입력  2018/10/01 [19:09]

파조(派祖) 퇴재(退齋)선생 및 증조(曾祖)()() 삼대(三代) 문집 등 간행

사재 이십여억원 투자하여 경남 산청에효산서원창건

▲ 김세환(金世煥, 공평공 18세손)    

 

상촌(桑村)선조 후 김세환(金世煥, 癸酉生)선생은 경남 진주시 중앙동 출신으로 진주에서 춘세당한약방을 경영하고 있다.

 

언제나 인생오계(生計, 身計, 家計, 老計, 死計)를 기준하여 시청언동(視聽言動)의 사잠지례(四箴之禮)와 용력(勇力)과 지혜(智慧)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선도자(先導者)이다.

 

더욱 위선(爲先)에 대한 경모의념(景慕意念)이 투철(透徹)하여 당자(當者)의 파조(派祖) 퇴재(退齋)선생 문집 및 증조(曾祖), (), () 삼대(三代)의 문집을 간행하였다.

 

서기 19901월에 도유림회(道儒林會)를 개최하여 서원건립의 안 상정에 의거 성균관인추(成均館認推)으로 고향인 경남 산청군 차황면 철수리73번지 촌전임야이정(村前林野貳町) 상당과 3천여평 매입을 시작으로 사재 이십여억원을 투자하여 효산서원을 창건하여 본조와가십

여동(本造瓦家十餘棟)을 신축하였다.

 

서원은 상촌선생을 주벽(主壁)으로 공평공 퇴재선생을 연향(聯享)하였으며, 원손인 삼묵재(.)공 당자의 위조(胃組)를 배향 정립하였다. 봉안에 이어 매년 양력 55일을 정하여 전국유림체제로 봉향하니 해가 거듭할수록 참제원(參祭員)이 증가함에 선현과 종족에 대한 갸륵한

성의(誠意)는 경각심(警覺心)을 더욱 불러 일으켜 주는 큰 행적을 남겼다.

 

아래는 세환선생이 창건하신효산서원전경이다.

 

효 산 서 원


 

소 재 지: 경상남도 산청군 차황면 철수리 273

 

배향인물: 주벽 - 김자수(金自粹)연향 - 김영유(金永濡)배향 - 김상예(金商禮)

 

창건연대: 18874

 

향 사 일: 55(어린이날)

 

연 혁

 

이곳은 김상례(金商禮)의 유적지(遺蹟址)이다.

 

당시 홍경래난(洪景來亂)의 여파로 속세를 떠나 산골에서 쓰라린 고통과 험운(險韻)을 겪어 가면서도 어버이를 섬기며 숭조 의념이 남 달라, 전대(前代)의 관망(冠網)을 매듭짓고 자연과 풍영(風詠)을 벗삼아 초야에 묻혀 살면서 벼슬에 나가지 않는 순결한 위인(偉人)이 살아온 곳이다.

 

이때 잉승(仍承)된 사문(斯文)으로, 언제나 변함없는 가범(家範)과 예절(禮節)이 완연(完然)하고 정민(貞敏)함에 금세(今世)에 인감(人鑑)이 되는 본손 세환(世煥)이 유림의 후원(後援)에 힘입어 사원(祠院)을 준성(竣成)하여 삼현(三賢)을 모시고 향예(享禮)하고 있다.

 

상촌선생(桑村先生)은 누조(累祖)에 걸쳐, 안동옥계(安東玉溪) 인계타양(仁溪陀陽) 화산서원(花山書院) 영동각계에 충효사(忠孝祠) 초강서원(草江書院) 그리고, 보은병산서원(報恩屛山書院) 등지에서 봉향 하였는데 고종(高宗) 때 철원령(撤院令)에 의해 훼철당하고 지금 충북음성에 지천서원(知川書院) 안동에 타양서원(陀陽書院)과 충북 이류면에 팔봉서원(八峰書院)에 향예하고

있으나 선생의 태생(胎生)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고역(故域)에는 우모지소(寓慕之所)가 없어 본손으로서 고민만 거듭되는 세월을 보내다가 당세(當世)에 이르러 교남일우(嶠南一隅)인 산청군 차황면 철수리에 창건(創建)하여 봉사하고 있다.

 

배향인물

 

1)주벽- 김자수(金自粹)

 

() 순중(純衆) 호는 상촌(桑村) 본관 경주(慶州)

고려충정왕(高麗忠定王) 3(1351) 신묘생

 

동년(1393) 7월에 고려가 망한 후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셨다가 나와 광주추령(廣州秋嶺)으로 거처를 옮기셨다가 다시 고향인 안동에 은거(隱居)

 

조선조 태조 이성계가 왕위(王位)에 있을 때 공을 헌장(憲長)으로 불렀으나 불청(不聽)

 

태조(太祖) 11(1411) 9월에 강릉대도호부사(江陵大都護府使)로 임명되었으나 역시 불취(不就)

 

태종(太宗) 13(1413) 엄지(嚴旨)로 형조판서에 불렀으나, 광주추령(廣州秋嶺)에서 유시(遺詩)를 남기고 자결(自決)하심.

 

2)연향 - 김영유(金永濡)

 

() 택부(澤夫) 호는 퇴재(退齋) 시 공평(諡 恭平)

 

() 경주(慶州) 이는 상촌선생의 손자이다.

 

세종(世宗) 29년 정묘(丁卯)에 별시(別試) 문과에 올라 대사성, 대사헌, 이조참판, 삼남해, 사도방백, 개성유수(開城留守), 자헌대부(資憲大夫),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이르고 신묘 기록에 좌리원종일등공신(佐理原從一等功臣)으로 기로사(耆老社)에 드셨다.

 

3)배향 - 김상례(金商禮)

 

() 희윤(熙潤) 호는 삼묵재(.)

 

순조(純祖)때 시관(始冠)하여 은거하면서 자신을 지키며 한언(罕言)과 근신예도(謹身禮度)는 언제나 군자(君子)의 정의로운 교화를 초지일관(初志一貫)타가 생애(生涯)를 다한 현사(賢士)이다.

 

이 셋 어진이의 공덕(功德)을 기리기 위함이요. 특히 조선 말기로부터 서구문화의 새로운 교육제도가 생겨나면서부터 서원의 기능이 약화되고 향사만 드리는 곳으로 변해 가는 것을 아쉽게 생각한 나머지 경상대학한문과교수(慶尙大學漢文科敎授)들의 더할 수 없는 협조로 전국 한문학과 수재(秀才)들을 선발(選拔)하여 약 5년간 동하기(冬夏期) 방학을 이용하여 훈도(訓導)에 매진타가 운영사정에 의해 중단하고, 그 뒤를 이어 한국고전번역원(韓國古典飜譯院)에서 한해 2회에 방학기를 정하여 후학육성에 총력(總力)을 하는 바 옛 서원의 구실을 하고 있다.

 /상촌신문(http://sangch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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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0/01 [19:09]  최종편집: ⓒ 데일리코리아( http://www.dailykorea.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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